한국인이 찾지 않는 일터에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농촌 비닐하우스, 교외 공장, 바다 위 양식장이 그들의 집이다. ‘집 아닌 거처’에는 365일 24시간 일과 쉼이 뒤섞여있다. 부조리한 노동 관행과 열악한 생활 조건이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을 위협한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 이주노동자가 계속해서 들어온다. 그들의 집은 허술한 법 제도와 느슨한 관리∙감독 아래 무너져간다.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이 제조업과 농어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실태를 취재하고 인권 활동가와 노동 전문가 인터뷰, 해외 사례 조사 등을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했다. 이 시리즈는 뉴스통신진흥회 주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편집자주)
“캄보디아에서 왔어도 한여름엔 더워서 힘들어요.”
지난 1월 23일 저녁 5시 경기도 포천시 채소 농업 단지에 있는 한 상추농장.
투명한 비닐하우스 사이에 위치한 검은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에는 채소가
아닌 ‘사람’이 산다. 캄보디아 40대 여성 이주노동자 쏙(가명) 씨도 그곳에
살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포장용 박스, 기름통 및 생수병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안쪽에는 하얀 조립식 패널로 만든 ‘집’이 보인다. 방 하나의
크기는 6.61제곱미터(㎡). 1.9평의 공간에 난방시설은 없었고, 그들은
전기장판과 이불로 한겨울을 나고 있었다. 천장에는 녹슬고 부서진 데다
필터에 먼지가 새까맣게 낀 에어컨이 눈에 띈다. 창문은 있지만, 바깥
비닐하우스에 씌운 차광막 때문에 햇빛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겨울에는 농작물 보호를 위해 농사용 비닐하우스 내부의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쓸 온수를 끌어간다. 그래서 밤 9시까지
숙소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왔지만, 샤워는커녕 물도
내릴 수 없다.
“일할 때도 스트레스, 기숙사 와서도 스트레스, 더 힘들까 봐
신고했어요.”
설 연휴였던 지난 1월 24일, 경기도 이천시 B 플라스틱 제조 공장 기숙사에서
네팔에서 온 30대 남성 니마(가명) 씨를 만났다. 그의 숙소는 공장 바로 옆에
있는 컨테이너다. 회색빛 컨테이너는 곳곳에 붉은 갈색으로 녹이 슬었다.
벽지와 장판 곳곳에는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었다.
니마 씨 동료들은 공장 입구에 있는 또 다른 기숙사에 산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8개의 ‘쪽방’이 들어서 있다. 각 방에는 창문이나 환기구가 전혀
없다. 추운 겨울에 문을 닫으면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방과 방 사이는 얇은 나무판자로 구분돼 있어 옆방 통화 소리가 다 들린다.
노동자 15명이 소변기 2개, 좌변기 2개가 설치된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쓴다.
공장 안쪽 구석에 길이 1.5미터(m)짜리 바벨 2개와 5킬로그램(kg)짜리 덤벨
하나로 간이 체력단련실을 꾸렸는데, 바로 옆에 ‘위험 특별고압 22,900V'라는
경고 문구가 선명하다.
“바람 불면 멀미 나와, 많이 힘들어.”
30대 남성 안바디(가명) 씨는 2년 전 ‘가두리 집’에서 지낸 기억이 생생하다.
가두리 집은 바다 위 바지선에 있는 컨테이너다. 대개 물고기를 기르는
가두리양식장과 연결돼있다. 여수시 돌산읍에는 이런 곳이 많다. 대부분
이주노동자가 일하며 살고 있다. 여수이주민센터 김덕영 실장은 가두리 집이
위아래로 흔들리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다고 말한다.
“(천장 높이) 여기 작아, (머리 위 여유 공간이) 많이 없어요. 키가 머리
위에 닿았어.”
안바디 씨는 바지선이 파도에 요동칠 때 머리가 컨테이너 천장에 닿은 적
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설치해 집처럼
꾸며놓았다. 해저 케이블로 인터넷도 쓸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쉬어, 그럼 그때 (육지로) 나와.”
3년 전, 같은 양식장에서 일한 20대 남성 만다르(가명) 씨는 ‘한 달에 한 번’
땅을 밟았다. 사업주는 수시로 가두리 집을 드나들며 식재료를 가져다줬다.
쉬는 날엔 양식장 관리선을 타고 여수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배는 사업주가
같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바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몸이 아파도
육지로 나오지 못한다.
“캄보디아에서 왔어도 한여름엔 더워서 힘들어요.”
지난 1월 23일 저녁 5시 경기도 포천시 채소 농업 단지에 있는 한
상추농장. 투명한 비닐하우스 사이에 위치한 검은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에는 채소가 아닌 ‘사람’이 산다. 캄보디아 40대 여성
이주노동자 쏙(가명) 씨도 그곳에 살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포장용 박스, 기름통 및 생수병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안쪽에는 하얀 조립식 패널로 만든 ‘집’이 보인다. 방 하나의
크기는 6.61제곱미터(㎡). 1.9평의 공간에 난방시설은 없었고, 그들은
전기장판과 이불로 한겨울을 나고 있었다. 천장에는 녹슬고 부서진 데다
필터에 먼지가 새까맣게 낀 에어컨이 눈에 띈다. 창문은 있지만, 바깥
비닐하우스에 씌운 차광막 때문에 햇빛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겨울에는 농작물 보호를 위해 농사용 비닐하우스 내부의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쓸 온수를 끌어간다. 그래서 밤 9시까지
숙소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왔지만, 샤워는커녕
물도 내릴 수 없다.
“일할 때도 스트레스, 기숙사 와서도 스트레스, 더 힘들까 봐
신고했어요.”
설 연휴였던 지난 1월 24일, 경기도 이천시 B 플라스틱 제조 공장
기숙사에서 네팔에서 온 30대 남성 니마(가명) 씨를 만났다. 그의 숙소는
공장 바로 옆에 있는 컨테이너다. 회색빛 컨테이너는 곳곳에 붉은
갈색으로 녹이 슬었다. 벽지와 장판 곳곳에는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었다.
니마 씨 동료들은 공장 입구에 있는 또 다른 기숙사에 산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8개의 ‘쪽방’이 들어서 있다. 각 방에는 창문이나 환기구가
전혀 없다. 추운 겨울에 문을 닫으면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방과 방 사이는 얇은 나무판자로 구분돼 있어 옆방 통화 소리가 다
들린다. 노동자 15명이 소변기 2개, 좌변기 2개가 설치된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쓴다. 공장 안쪽 구석에 길이 1.5미터(m)짜리 바벨 2개와
5킬로그램(kg)짜리 덤벨 하나로 간이 체력단련실을 꾸렸는데, 바로 옆에
‘위험 특별고압 22,900V'라는 경고 문구가 선명하다.
“바람 불면 멀미 나와, 많이 힘들어.”
30대 남성 안바디(가명) 씨는 2년 전 ‘가두리 집’에서 지낸 기억이
생생하다. 가두리 집은 바다 위 바지선에 있는 컨테이너다. 대개
물고기를 기르는 가두리양식장과 연결돼있다. 여수시 돌산읍에는 이런
곳이 많다. 대부분 이주노동자가 일하며 살고 있다. 여수이주민센터
김덕영 실장은 가두리 집이 위아래로 흔들리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다고
말한다.
“(천장 높이) 여기 작아, (머리 위 여유 공간이) 많이 없어요. 키가
머리 위에 닿았어.”
안바디 씨는 바지선이 파도에 요동칠 때 머리가 컨테이너 천장에 닿은 적
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설치해 집처럼
꾸며놓았다. 해저 케이블로 인터넷도 쓸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쉬어, 그럼 그때 (육지로) 나와.”
3년 전, 같은 양식장에서 일한 20대 남성 만다르(가명) 씨는 ‘한 달에 한
번’ 땅을 밟았다. 사업주는 수시로 가두리 집을 드나들며 식재료를
가져다줬다. 쉬는 날엔 양식장 관리선을 타고 여수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배는 사업주가 같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바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몸이 아파도 육지로 나오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기피하는 일자리, 농촌 들녘의 비닐하우스 단지나
교외 벽지의 공장, 섬과 해안선으로 둘러싸인 어촌에 고용된다. 출퇴근이
어려운 사업장의 고용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일자리와 함께 거처를 제공한다.
대개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등의 임시가건물이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임시가건물의 월세를 받는다. 월급에서 일정 비율로 공제하는
식이다.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주된 방법이다. 한 집에 노동자가 많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월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이주민 인권단체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펴낸 〈최저보다 낮은-2018 이주노동자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에 따르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의
55.4%가 임시가건물과 작업장 부속 공간이었다.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의
숙소가 많은 농축산어업에서 평균 숙소비는 20만3200원이었다. 또 작업장
부속 공간의 비율이 높은 제조업은 평균 13만4000원이었다.
임시가건물에 월세를 매겨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깎을 수 있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 때문이다. 2017년 2월부터 시행된 공제지침은 주거의 ‘질적인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숙식을 제공하고 서면 동의를 받은 사업주라면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공제 비율은 숙소와 식사 제공 여부에 따라 통상 임금의 8%에서 최대 20%에 이른다. 비영리 민간단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의 이현서 변호사(현 화우공익재단)는 지침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숙식비는 숙소의 면적, 상태 등을 기준으로 정해져야 상식이죠. 누구나 그렇게 집을 알아보고 다니면서 월세를 비교하잖아요. 그런데 이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숙소는 비닐하우스도 상관없고, 화장실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지침에 따르면 사업주는 어떤 집을 제공하든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열악한 주거 시설이라도 ‘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일부 사업주는 형편없는 시설에 이주노동자를 모여 살게 하고 개별 숙식비를 걷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깎는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쉼터이자 상담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집이 아닌 곳에 사람을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숙식비 공제 지침은 (이주노동자를) 집 아닌 곳에 살도록 하면서 (사업주가) 임금을 뜯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집은 질에 따라서 적당한 가격이 매겨져야 하는데, 질적 기준 없이 부적절한 가격 산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임금 삭감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현서 변호사는 “사업주 입장에서 안전한 숙소를 만들어야겠다는 경각심이 사라졌다”며 “(노동부 지침은) 숙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만 남긴 지침”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제2차 이주 인권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부에 주거환경 실태조사와 숙식비 공제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숙식비용 징수에 관한 지침을 폐지하도록 권고했으나 변화가 없다.
지난 2018년 전국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 1,21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회사 제공 기숙사의 67.9%가 회사나 공장 안에
있었다. 야간작업하거나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는 기숙사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유해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 주택 권고(Workers' Housing
Recommendation)’에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숙소를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가 지역사회와
차단되고, 사업장에 종속되거나 통제받는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밖에 직접 숙소를 구하도록 권장한다.
경기도 여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비닐하우스 단지에는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이 숨어있다. 차광막이 처진 비닐하우스 아래 이주노동자의 집이다.
비닐하우스의 바깥 미닫이문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임시가건물에 달린 얄팍한
방 문고리가 유일한 잠금장치다.
여성노동자의 무방비한 숙소에는 한국인 남성 관리자가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다. 여성노동자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오빠한테 뭐야 이게, 한국에서
어떻게 하는 줄 아냐”며 여성노동자를 강제로 쓰러뜨린 뒤 성추행했다. 이후
발생한 임금체불에 관해서 사업장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짐 다
싸, 너희들 월급 주고 캄보디아 보낼 거야”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일부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내 성추행,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체류 자격이 사업장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하려면 기존 사업주와 협의를 거쳐
‘사업장 변경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언어 탓에 소통이 어렵고,
체류 자격을 유지하려면 사업주가 계약을 연장해야 하므로, 문제가 생겨도
대등한 협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광주∙전남 지역 이주민을
지원하는 광주민중의 집 윤영대 대표는 “사업주에게 잘못 보이면 자칫
미등록(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와의
관계에서 불편할 수 있는, 갈등의 소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주거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일터를 더 숨
막히게 만든다는 얘기다.
아래 영상은 2012년 1월부터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해오던 캄보디아 여성
삐썯(가명) 씨가 성추행 피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2017년 7월 7일 몰래
촬영한 영상이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저런 주거공간이 저런 관계(상황)를 만든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주변환경과 범죄에 취약한 주거시설이 사업장에 매인 이주노동자의 체류 신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환경은 일터의 긴장을 쉼터로 이어가게 하고, 생활 속 위험과 불안을 낳는다. 그는 “(사업장)을 나가면 미등록(불법체류)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영상 속 피해 노동자는 2017년 비자 만료로 귀국했고, 가해 남성 관리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 의원 등
주최로 열린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는 농업
여성이주노동자 202명 가운데 12.4%가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등의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36.2%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조업 여성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1.7%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업장 내 여성이주노동자의 성폭행 피해 문제가 불거지자 노동부는 2019년
1월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를 개정했다. 개정된 고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내 성폭행 피해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한숙 소장은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가 없다”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증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국인고용법 시행령에 따라, 2018년부터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외국인 기숙사 시설표’를 제공해야 한다. 시설표에는 필수 시설의 설치 여부와 그 종류를 기재하게 돼 있다. 설치장소, 침실의 구분, 침실의 기준, 필수시설, 잠금장치 등 5가지의 사업주 준수사항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설표를 잘 지켜도 ‘살 만한’ 주거시설이라는 보장은 없다. 상태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이 체크 사항만으로는 실제 주거환경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지난 1월 24일 만난 니마(가명) 씨의 기숙사 컨테이너 현장을
토대로 가상 주거시설표를 작성했다. 11가지의 기재사항 중,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①사업체 정보와 현장만으로는 알 수 없는 ⑪전기안전진단
이행 여부는 작성에서 제외했다.
해당 기숙사는 ②주거시설의 유형 중 컨테이너에 속하며 ③설치장소는 도시
인근이다. ④침실 항목을 살펴보면 니마 씨가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구분 기준과 근무조 구분 기준을 충족한다. 침실 면적은 18㎡로
기준(1인 별 2.5㎡)의 약 7배다. 잠금장치도 설치돼있다.
화장실이 숙소 외부에 마련돼 있긴 하지만 수세식 화장실이며, 목욕실도
별도로 있다.(⑤화장실, ⑥세면 및 목욕시설). 난방시설로는 보일러가
깔려있고 선풍기가 있어 냉방시설 기준도 충족된다(⑦난방시설, ⑧냉방시설).
컨테이너 3면에는 4개의 창문이 있어 ⑨채광 및 환기 시설 기준은 물론,
출입문 옆 소화기로 ⑩소방시설 기준도 맞추고 있다. 시설표가 규정한
주거시설의 구색을 갖춘 기숙사다.
하지만 이 시설표와 현장을 비교해보면 서류와 현장의 간극이 명확히
드러난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E-9)는 총 223,058명(2019년
하반기 기준)이다. 이들은 어떤 집에 살고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이를
알아보는 데 소홀하다. 지난 2019년 주거환경 실태조사에서 ‘숙소유형’
항목의 표본은 불과 2,494건이었다.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에 2019년 주거환경 실태조사의 항목별 결과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이 가운데 근로감독관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숙소환경’
항목은 매우양호, 양호, 보통, 불량, 매우불량 등 5단계로 나뉘어있다.
불량과 매우불량을 받은 사업장 숙소가 전체 1,380개 중 18개인
1.3%뿐이었다. 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다. 활동가들은
근로감독관과 함께 숙소환경을 살펴보기를 희망한다.
지역 | 외국인근로자 | 사업장 | |
---|---|---|---|
-- | -- 명 | -- 개소 |
-- | -- 건 | -- 건 |
전국 48개 고용노동지청에 2019년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 ‘지도‧점검 등 기록부’ 전문을 확보했다. 노동부는 사업장 총 3,063곳을 지도·점검해서 법 위반 사례 6,895건을 적발했다. 그러나 ‘외고법(외국인고용법) 위반’ ‘근기법(근로기준법) 위반을 등 개괄식으로 쓴 자료만으로는 이주노동자 숙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수기로 작성한 경우도 많아, 데이터를 종합하는 체계가 없다는 게 드러난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부터 ‘점수제’ 방식으로 고용허가제 외국인 인력을
배정하고 있다. 고용허가 요건을 만족하는 사업장에 대해 감점·가점 항목별로
채점한다. 이후 총점이 높은 사업장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한다. 가점항목
중에는 ‘우수 기숙사 설치·운영’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점을 받기
위해 숙소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자는 별로 없다. 왜일까?
2020년 1분기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들의 평균 점수는 86.57점이다. 올해
노동부는 점수제에서 주거 관련 항목을 강화했다. 주거 감점 항목도
늘어나고, 감점 배점도 커졌다. 그러나 기본항목만 모두 중간점수를 받아도
2020년 1분기 고용허가 사업장들의 평균 점수인 86.57점을 넘는다. 사업주는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우수 기숙사를 만들어 가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외국인력 고용허가
사업장 25,162곳 중 주거감점(‘가점9’+’감점13’+’감점15’ 3개 항목 합산
기준) 해당 사업장은 2,562곳으로 전체 10.2%에 해당한다. 이 데이터는 주거
항목에서 감점만이 아니라 가점받은 경우를 인정해주기 위해 3개 항목을
합산해 산출했다. 그런데도 주거 항목에서 마이너스 점수가 나오는 경우를
통계에 반영했다. 주거 감점이 되더라도 사업주가 고용허가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어떤 걱정을 하냐면, 사장님에게 숙소 문제 말했다가
혼자만 차별당하면 지내기 어렵잖아요. 그거 걱정해서 안 하는 사람
많아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좋게 말했는데, 나만 좋지 않게 말해서
나만 어려운 일 시키고, 집에 늦게 가게 하고…….”
지난 2월 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미얀마 담마야나 부디스트센터에서 만난
림욕손 박사의 말이다. 그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근로계약위반 등 문제가 생겼을 때 통역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를
찾아오는 미얀마 청년 대부분은 깻잎 농장 등 농촌에서 일하며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 살았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슈퍼 갑’이다. 일자리와 숙소, 체류자격까지
좌우한다. 이주노동자가 숙소를 고쳐달라고 하더라도 사업주는 응할 의무가
없다. 견디다 못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면, 노동부는 이를
허가하기 전에 숙소를 확인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사업주가
시정명령을 이행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니 계속 일하라는 식이다. 시정명령
이행 기간은 6개월이다.
“주거 문제를 신고하면 길게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후에
사업장 변경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잖아요. 기간 안에 시정하면 이 사람은
계속해서 그 사업장에서 일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그걸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느냐, 사업주 눈치 보면서 일할 수 있느냐고 말해요.”
네팔 출신인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2010년부터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많은 노동자가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그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노동자들이 주거에 관한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참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2019년 7월 시행 고시에 제5조의2(기숙사의 제공 등) 내용을 추가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기숙사 혹은 실제와 다른 기숙사 정보를 준 사업장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노동부는 현장을 점검해 기숙사 기준 위반
등을 적발하고 신속히 사업장을 변경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숙사 기준 위반을 신고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얻어내려면
‘시정명령 이행 기간’을 견뎌야 한다는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숙소 개선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고용노동부 혹은 고용센터가 하는 겁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이주노동자가 직접 숙소에 관해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구조를 지적한다. 2019년 2월 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개정 고시했다. 이 고시에는 ‘숙소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직업안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시정할 것을 요구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시정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가 명시됐다. 여기서 말하는 직업안정기관의 장은, 바로 고용노동부나 고용센터다. 이한숙 소장은 노동부 개정 고시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려도 문제가 있어요. 사업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개선하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이 된다고 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애매하거든요.”
“2년 전 포천에 네팔노동자가 살던 기숙사는 여름에 비가 새고, 겨울에는 난방이 허술했어요. 그 친구들은 농장주에게 기숙사를 수리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 농장주는 수리해주겠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우리를 다른 농장으로 갈 수 있도록 서명해달라’고 했지만, 서명도 안 해주고 수리도 해주지 않으면서 그 기숙사에 계속해서 살도록 강요할 때, 그들은 참으로 힘겨워했어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의 말이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을 때 숙소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주노동자에게 고용주는 ‘절대군주’와 같아서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등 산업안전, 주거환경, 노동인권 문제를 고발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업주도 인식이 바뀌지 않고, 지자체나 노동부에서 실태 점검을 하고도 기숙사 시설이 1년 이상 바뀌지 않고 있어요.” “다른 데 갈 수 있도록 서명도 안 해줘서 이주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태업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사업주 다수는 ‘이렇게 지내는 거 뭐 어떠냐, 우리도 이런 데 살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분들도 개선해야 하고, 이주노동자도 개선해줘야 하는 거죠.”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업주들이 ‘돈이 없거나 건물 허가를 받기 어렵다’ 등의 이유 대신 ‘나도 컨테이너에 산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꼬집었다. 농사짓는 동안 오가는 불편을 줄이려 집을 놔두고 비닐하우스에서 머무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이주노동자의 형편없는 주거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구분 | 2005년 | 2010년 | 2015년 | 변화율 |
---|---|---|---|---|
일반가구 | 15,887,128 | 17,339,422 | 19,111,030 | 20.3% |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일반 가구 | 57,066 | 129,058 | 393,792 | 590.1% |
호텔·여관 등 숙박업소의 객실 | 9,073 | 14,255 | 30,131 | 232.1% |
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 | 3,450 | 11,943 | 29,661 | 759.7% |
판잣집·비닐하우스·움막 | 21,630 | 16,475 | 11,409 | -47.3% |
기타 | 22,913 | 86,385 | 322,591 | 1307.9% |
전체 일반가구 대비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일반가구 비율 | 0.4% | 0.7% | 2.1% | - |
한국인 중에도 열악한 거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도시연구소에 맡겨 2018년 작성한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내 가구 중 판잣집·비닐하우스·움막에 거주하는 가구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1만1409가구였다. 2010년의 1만6475가구에 비해서는 47.3%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이는 일부에 불과할 뿐,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일반가구’의 전체 수는 급증했다. 2015년의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일반가구는 39만3792가구로 2010년의 12만9058가구에 비해 약 3배, 2005년에 비하면 약 7배 증가했다.
유엔(UN)은 2017년과 2019년 한국 정부에 ‘주거 최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비적정 거주민이 증가하는 상황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비적정 주거 거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최소 주거면적 등 양적 측면 뿐 아니라 안전과 위생 등 질적
측면을 고려한 최저주거기준 마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이 마련돼도 이주노동자는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주거기준법의
대상이 ‘국민’으로 한정돼 있어 외국인(이주노동자)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한국의 열악한 주거 문제에서 이주노동자를
떼놓지 않고 전체를 엮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주거 관련
조항 등에서도 외국인이 제외된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차별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자 숙소에 관한 권고’에도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에게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있다.
한국의 취약계층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선택할 수밖에 없듯,
취약한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를 강요당하고 있다.
전통적 이민 국가인 캐나다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농업 분야에 이주노동자를
최장 8개월까지 고용할 수 있는 계절근로자제도(SAWP)를 운영한다. 캐나다
서비스청(Service Canada)이 고용주의 채용∙대리인 자격 여부를 심사해
‘노동시장영향평가서(LMIA)’를 발급한다. 이것을 받은 사업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자국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려는 취지인데,
심사∙평가 항목에 ‘숙소 점검’도 들어간다.
고용주는 이주노동자에게 캐나다연방정부주택청(CMHC)의 기준에 맞는 숙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침실은 다른 생활시설과 반드시 분리돼야
하고, 화장실과 세면대 등 개인위생 시설은 실내에 있어야 한다. 숙소
점검(Housing Inspection)은 연방과 주정부기관이 직접 하거나, 정부 승인을
받은 사설 주택점검 업체가 맡는다. 한국에서 시설표 항목을 사업주가 기재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캐나다의 외국인력 정책에서 눈여겨볼 점은 10페이지에 달하는 ‘주거 점검
보고서’다. 주거지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점검 사항을 자세히 기재하게 돼
있다. 숙소의 종류와 상태, 조명과 환기시설, 방충시설 구비 여부 등 점검
항목이 41개나 된다. 시설이 있는지만 확인하는 한국의 점검표와 달리,
캐나다는 일부 시설의 설치 위치와 개수까지 자세하게 파악한다. 소화기,
화재감지기, 대피로의 숫자를 적고 인원 대비 화장실 수, 샤워기와 냉장고
개수도 기재한다. 작성자가 점검표의 26개 항목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할 수
없다면, 그 사유를 적어내야 한다. 필요 시설과 장치는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 파악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
필수 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업주는 외국인 고용허가 대상에서 ‘자동
탈락’한다. 한국의 숙소 시설 점검표는 고용허가 점수제에 반영되는
정도지만, 캐나다는 고용허가 여부를 좌우하는 것이다. 특히 사업주가 기재한
시설 점검표에 허위가 있을 경우 감점에 그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 ‘이민 및 난민보호법’에 따라 10만 캐나다
달러(약 8600만원) 미만의 벌금 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는 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자격을 2년 동안 상실한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 이현서 변호사(현 화우공익재단)는 사생활을
중시하는 캐나다와 미국의 사회 문화에 주목했다.
“한시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공간의
기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미국은 이주 및 계절농업 노동자 보호법(MSPA)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 이 법은 임금, 주거, 교통 등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는데,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 ‘연방 및 주의 보건안전 기준’에 대한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근로자는 필수 주거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연방의 산업안전보건법(OSH Act)은 부지, 주거지,
수도시설, 화장실, 세탁-목욕시설, 조명, 쓰레기 처리 등 12개 항목의
필수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다른 노동자의
침실을 지나가야 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장소에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여기서 최종 허가를 받은 사업주만이 ‘농가 근로자 계약(FLC)’에 참여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업장 명단은 미국
노동부 임금시간부서의 웹사이트에 게재된다. 또 허위기재, 시정명령 불응,
MSPA 기준 미달, 유죄 판결 등으로 자격을 상실한 사업장의 명단도 따로
올린다. 유관 부처로부터 관련 정보를 요청해 받아볼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는 주거문화의 차이 때문에 일하러 간 나라의 거주지에서 어떤
조건을 살펴봐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는 추운 겨울에 바닥 난방이 없어서 발생할 문제를
(겪어보기 전엔) 모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보호 사항을 명시한 포스터를 사업장
내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포스터는 주거권을 비롯해
노동자가 가진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사업장 내 차별∙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당국에 이의제기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017년 9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을 대표로
'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개정안', 일명 ‘비닐하우스 주거 방지법’이
발의됐다. 국회와 시민단체, 고용노동부가 1년여간 논의한 끝에 2018년 12월
본회의 통과가 이루어진 뒤, 지난해 7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현행법이 열악한 기숙사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을 개선하고 외국인근로자의 노동 인권 보호수준을 개선하도록 기숙사
규정을 정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5조에 새로운 조항이 추가됐다. 이전에는 ‘남성과
여성을 같은 방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만 명시되어 있었지만,
개정안에는 ‘1.침실 하나에 15명 이하의 인원이 거주할 수 있는 구조
2.화장실과 세면·목욕시설을 적절하게 갖출 것 3.채광과 환기를 위한 적절한
설비 등을 갖출 것 4.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를 갖출 것 5.화재 예방
및 화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위한 설비 또는 장치를 갖출 것’ 등 구체적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른 하나는 ‘고용허가제’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는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이다. 외국인고용법 제22조의 2에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한 기숙사를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기숙사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그러나 법 개정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지만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게 허용된다고 해서 주거 문제가 확 풀리진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주거 환경) 조건을 충족하는 사업장에만 고용허가를 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외국인고용법 개정 과정에서 고용허가 요건에 ‘기숙사 기준’을 포함하는 방안이 시민단체 및 이용득 의원 제안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최종 개정안에서 삭제됐다. 이현서 변호사는 현행 이주노동자 고용허가 요건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기숙사 기준을 고용허가 요건으로 제안했던 건 외국인고용법 고용허가 규정을 보면 허가를 받기 위한 조건이 매우 단순해요. 내국인을 고용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되고, 일정기간 동안 임금체불 기록이 없으면 돼요. 산재가 빈발했던 사업장, 산재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게 반복되는 사업장들도 고용허가는 다 받을 수 있는 거죠. 정말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해서 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고용허가를 주도록 바꾸자는 게 제일 큰 저희들의 목적이었어요.”
지난해 ‘기숙사’ 문제로 사업장이 변경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고용부가 기숙사 관리∙감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8년 법 개정 당시 이용득 의원과 시민단체는 ‘근로감독관의 기숙사 관리∙감독 의무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삽입하고자 했으나, 의무 조항을 둘 경우 고용노동부의 행정력을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해당 조항 역시 최종안에서 삭제됐다. 이 변호사는 근로감독관의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근로감독관 의무라고 규정된 게 딱 하나인데 그게 ‘비밀유지 의무’에요. 기숙사 관리∙감독 의무는 비밀유지 의무하고는 전혀 연관 없고, 다른 관리∙감독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숙사 관리∙감독 의무만 넣는 것은 어렵겠다는 의견을 고용노동부 측에서 내놨다고 들었어요. 저희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연구하면서 놀랐던 게, 근로감독관에게 부여된 의무가 너무 없더라구요. 근로‘감독’관이니 (근로 실태를) 감독을 할 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앞으로 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죠.”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 개정을 통해 이주노동자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동안, 실태조사
등의 책임을 시민단체가 도맡아야 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현행 조례에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같이 추상적인 조항들이 많다”며 “그런
경우 공무원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실질적인 지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외국인주민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 제5조(광산구의
책무) 및 제6조(외국인 주민 등의 권리 및 책무)를 살펴보면, 관련 규정이
원론적인 인권 보장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광주·전남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광주민중의집 윤영대 대표는
“시민단체는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야 각종 지원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데 현재는 독자적으로 해야 한다"라며 “(각종 지원사업에 대한) 조례가
구체적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인의 이주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 자료를 살펴보면, 2017년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하는 트윗 1만
개를 분석한 결과 연관 단어로 ‘혐오, 새끼, 결사반대, 불법체류자’ 등이
추출됐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미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돌아가기 힘든 구조다.
저출산과 내국인의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자리)업종 기피 현상이
맞물리면서 우리 산업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한숙 소장은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일주일만 싹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라며 “지금 같은 ‘두더지 잡기’식 정책 처방이 아니라 이주민
체류를 장기적·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네팔 및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3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퇴직금 지급시기를
‘출국 후 14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해당 조항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016년 열린 선고 공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에게도 근로의 권리에
관한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근로의 권리에는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포함된다(2014헌마367 결정).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란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당시 공판에서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은 판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헌법상 기본권인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에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이 포함되어야만,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이 개선될 헌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현서 변호사는 주거권은 선거권 같은 정치적 권리와 구별되어야 하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들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나라에 머무는 이상, 당연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라며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선 의식주가 갖춰져야
하고, 그중에 주가 바로 주거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거권을 보편적인
인권으로 바라봐야만, 단기 이주노동자나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집은 모든 삶의 밑바탕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밖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사회 일원으로 자리 잡은 그들이 편안한 ‘쉼터’를 가질 수 있도록,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은 곧 우리 노동자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